괴물도감: 서양편 (2021)

괴물도감: 서양편 (2021)

 




2021년에 ‘성안당’에서 ‘고고학자(강석민)’이 집필한 괴물 사전.

내용은 타이틀 그대로 서양 문화 속에 나오는 괴물들 132마리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엮은 것이다.

저자 소개를 보면 작가가 산업 디자인학과를 나와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했다고 해서, 작중에 실린 모든 괴물 소개에 괴물 그림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게 긍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책 소개에는 섬세하고 리얼한 터치감이 돋보이는 괴물 그림이 어쩌고 하는데 그건 완전 과대광고다.

일전에 본 ‘이세계 디자이너를 위한 신박한 요괴자료집(2019)’은 그래도 작가가 일러스트레이터란 게 체감이 되고 한국적인 느낌으로 그린 그림이 많았던 반면. 본작은 작가가 일러스트레이터인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삽화 퀼리티가 매우 떨어진다.

아무리 봐도 환상 생물을 그리는 건 작가의 전공 분야가 아닌 것 같고. 또 본문 내용과 삽화가 맞지 않는 경우도 속출해서 총체적 난국이다.

예를 들어 꼬리로 사람의 목을 휘감아 죽인다는 괴물 이야기를 하는데. 일러스트에서는 꼬리가 짧게 그려지거나, 발톱으로 사람을 해친다는 괴물 이야기를 하는데 삽화에서는 발톱이 보이지 않는가 하면, 괴물이 붉을 털을 가지고 있다는데 삽화에서는 회색 털을 가지고 있는 것 등등. 그림과 내용이 완전 따로 놀고 있다.

그림은 둘째치더라도, 내용만 따라 놓고 봐도 문제가 크다. 본문 전반의 내용이 도해도감류 책으로 보기는 민망한 수준으로 텍스트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신화, 전설, 민담 원전에 나온 이야기를 쏙 빼놓고 뜬금없는 내용을 적거나, 심지어는 D&D 같은 TRPG 게임에 나온 몬스터 설정을 그대로 가져다 써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전자의 경우, ‘레비아탄’, ‘베히모스’ 같은 메이저한 괴물들을 예로 들면, 둘 다 성경 속에 나오는 대괴수인데. 본문에서 성경에 나온 두 괴수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고. ‘미라’ 같은 경우도 소개 글에는 무슨 장기가 썩어 악취가 난다고 적어놨는데. 미라는 이집트식 사후관에 따른 장례 절차를 거쳐 몸속 내장을 다 끄집어내고 방부 처리한 시신이라서 썩은 장기 냄새가 난다는 건 고증을 전혀 지키지 않은 내용인 거다.

후자의 경우, 드래곤이 그에 해당하는데, 이게 본래대로라면 중세 유럽 전설에 나오는 드래곤 이야기를 하는 게 정상이지만. 실제로 본편에서는 무슨 드래곤이 마법을 쓰고 폴리모프(변신)을 밥 먹듯이 하고, 심지어 뼈만 남은 본 드래곤이 나오는 것 등등. RPG 게임 속 드래곤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존나 어처구니가 없다.

괴물들 이름 표기도 죄다 한글 발음으로만 적어놓고 영어식 표기는 단 하나도 적지 않아서, 이름이 좀 생소한 괴물들은 저게 한국 발음으로 이름을 맞게 적은 건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이 생기고. 이름의 영어식 표기를 모르니 원전이 뭔지 검색하기도 어려워서 정보의 신뢰도가 매우 떨어진다.

그밖에 괴물의 출신 지역은 그렇다 쳐도. 괴수형, 악마형, 정령형 어쩌고 하는 타입별 분류와 괴물의 몸 크기 설정도 따로 넣은 건 진짜 쓸데없는 내용이었다.

타입별 분류를 할 거면 아예 타입에 따른 카테고리 단위로 분류해서 찾아보기 쉽게 해야지, 실제 본편의 목차는 그 어떤 단위 분류도 없이 가나다라 순서로 쑤셔 박아넣어서 목차가 체계적이지 못하다.

괴물의 크기 설정은 작가가 임의로 설정하는 건데, 이게 사실 작가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다 보니. 똑같은 괴물을 소개해도 크기 표시가 다를 수 있어서 전문성이 더욱더 떨어져 보이는데 왜 굳이 이런 걸 넣은 건지 모르겠다.

국내발 괴물 도감류 책으로선 의외로 미국 괴물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이건 ‘괴물 딴지’에서 소개된 크립티드(미확인 생물체) 목격담을 근간으로 두고 있는 것 같다.

‘프레스노 나이트크롤러’ 같은 경우, 괴물 소개란에 누군가 목격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내용을 그대로 적어놔서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무것도 확인된 게 없는데 왜 소개하냐고!)

이 작품에서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요괴/괴물 도감, 사전에서 다루지 않는 존나 마이너한 서양 요괴들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하와이 쪽 요괴가 그에 해당한다.

앞서 말한 듯 정보의 신뢰성에 의문이 많이 가서 텍스트가 부실하다고는 해도. 마이너 요괴를 다루는 것 자체는 정보의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나름 의미가 있는 일이다.

결론은 비추천. 괴물 도감으로서 괴물 소개와 함께 삽화가 들어간 걸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전반적인 삽화 퀼리티가 낮은 편이고. 본문 내용과 맞지 않는 것도 많아서 일관성이 없으며, 괴물 소개 글도 고증을 지키지 않아서 내용의 전문성과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져, 도감으로서의 완성도가 형편없지만.. 어지간한 도감에서는 다루지 않을 마이너한 괴물도 몇 마리 다룬 것 만큼은 나쁘지 않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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